지식/에세이

내향적 인간

유담(流談) 2019. 7. 28.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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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매우 내향적 인간이다. 하루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고 사람을 만나는 걸 즐기지 않는다. 나가서 노는 건 피곤하고 효율적이지 못하다. 물론 나가서 좋은 걸 듣고, 보고, 여행을 하면서 사색을 즐기는 건 좋지만 나가서 새로운 사람들과 즐거운 인간관계를 맺는 것보다 집에서 책읽고 폰으로 오늘의 기사를 읽고 하는 게 좋다. 또한 좋은 일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집에서 공부해야 효율이 높아진다. 피곤하면 침대에서 한숨자면 곪머리 아프던 머리도 맑아지고 행복해진다. 이렇게 조용한 인생을 즐기는 나도 어쩔 수없는 인간이라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가만 할 때가 있다. 수동적인 인간관계를 가지게 되었는데 나를 부르는 사람은 내가 피곤하더도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나마 내 사회성을 지켜주게 된다. 그 정도로 나는 그냥 바다 위에 박혀있는 섬인 것이다. 섬에서 나지 않는 자재를 매달마다 나가서 사와야하니 어쩔 수 없이 나가야한다. 물론 내 내향적 성격이 멋지고 외로움을 즐겨서 외로운 늑대로 고독 씹는 다는 중2 마인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인간관계에서 오는 자극에 민감하게 태어나서 남들보다 인간관계에서 얻는 스트레스와 고통이 커서 회피하게 된다가 오히려 맞는 말일 것이다. 정말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다들 사는 모양새가 비슷 비슷하지만 개체 별로 차이가 크다.

어렸을 적에는 인간에 데이지 않아서 밝고 쾌활 했지만 점차 나이 먹어가면서 인간을 믿지 않게 되는 건 정말 슬픈일이다. 요즘은 솔직히 괴롭기 까지 하다. 믿을 사람이 존재하지 않아서 누군가와 약속을 한다는 건 신용을 거는 일이지만 남에게 신용 자체가 생기지 않아서 겉으로는 웃으면서 너를 믿는 다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어쩌피 안믿어 라고 치부하는 내가 좀 별로다. 겉으로는 아닌 척 하지만 나는 진짜 하나씩 다 계산하면서 살아가는 게 힘들고 지친다. 나에게 호의를 베푸는 사람 역시 이해관계가 확인 되지 않으면 무조건 의심한다.

나도 사람을 좋아하고 싶다. 친구들이 이 글을 읽으면 섭섭해 할지도 모르지만... 걔네는 나름 생각해서 집에만 있는 나를 불러서 같이 놀아준다. 1달에 한 번 꼴로라도 다들 바빠져서 가끔 만나게 되었지만 걔네랑 다니면 뭔가 마음이 편하다. 친구들과 만나서 술을 먹으면서 내가 사색했던 것을 이야기 하곤 한다. 녀석을 뭔 생각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들어준다. 물론 다들 다 넌 너무 생각이 많다면서 면박을 주지만

몇 일전에 알바같이 하는 형 친구의 어머님이 돌아가셨는데 그 형이 알바하는 중에 연락을 받고 눈이 뻘게 져서는 눈물을 흘리더라. 그걸 보는 데 나도 내 친구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눈물을 흘리면서 같이 슬퍼해줄 수 있을 까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별로 같이 슬퍼하면서 눈물을 흘려 줄 수 없을 것 같았다.내가 미친 사이코 패스여서 공감을 못한다기보다는 나도 슬퍼지면 울고 힘들면 힘들다고 생각하니까 나는 그 상황을 격지 못했는 데 어떡해 공감을 하라는 거냐.

내 감정은 정작 슬픈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내가 겪은 게 아니니까 어느 정도 힘들 겠지 이해는 하지만 그래 정말 힘들겠다. 곧 괜찮아 질꺼야 하는 말을 하는 건 너무 나도 위선적이라고 생각한다. 내 인생에 후회 1위는 중학생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친구에게 예수쟁이 코스프레를 한 것이다. 중학교 시절 뭐 모르던 나는 선생이 시켜서 동급생 끼리 고민을 토로하는 편지를 무작위로 골라서 위로나 해결 하라는 짓을 한 적 있었다. 아마 어머니가 돌아가는 여동급생을 위로 하려고 한 거 추측하는데 하필이면 내가 그 여자애로 추정되는 편지를 받은 것이다. 나는 그 아이랑 친하지도 않고 내가 급속히 내향적으로 변하던 시점이여서 그 편지를 읽고 멘붕했다 누가 봐도 그 편지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 안나지만 내용도 너무 슬프고 힘들다. 어머니에대한 애정이 가득한 글이였는 그 상황이 너무 나한테는 너무 힘들었다. 도대체 뭐라고 위로 했어야 하는 걸까? 나는 고민하다가 그냥 신한테 떠밀었다. 나는 종교는 없으니 그냥 예수님한테 빌라고 했다. 근데 그 사건을 너무 후회한다. 지금 내게 그런 편지를 쓰게 할 기회가 온다면 나는 신따위한테 빌라고 하기보다 그냥 나는 모른다. 너의 슬픔을 완전하게 공감할 수 없다. 나는 그런 경험도 없고 또한 그런 경험을 겪는 다고 해서 너랑 같은 반응을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넌 이 위기를 잘해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왜냐하면 모든 마음이 건강한 인간은 다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가지고 있다. 해결이던 회피던 간에 다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된다. 니가 슬프다면 더 이상 눈물이 안나올정도로 울고 목이 셔서 말이 안나올때까지 소리지르고 배가 고파서 쓰러질때까지 가만히 있어도 아무도 너한테 뭐라고 할 수없다. 만족할 때 까지 슬퍼하라고 너 자신은 모를 수 있지만 내가 보이기엔 넌 건강한 사람이고 의지가 깊은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내 서랍장엔 그 아이에게 보내고 싶은 편지 한 장이 있다. 물론 걔는 연락 끊겨서 뭐하고 사는 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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