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찍이 잠에 들었다.
아마 여독이 풀리지 않아, 이른 잠자리에 들지 않았나싶다.
이른 선잠에서 깨기 전에 옛날에 돌아신 고교 시절 담임 선생님이 생각 났다.
그에게 나는 그저 수 많은 제자 중 하나 였을 것이다.
당시 나는 약간 음침하고 성격이 모났지만
별로 튀지 않는 학생이였다.
남에게 마음을 열지 않아서
많은 이들과 유대를 쌓지 못하였으나
언제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심을 바라는 한 마디로 평범한 고교생이였다.
그 당시 선생님은 친근하게 모두를 대하셨다. 크고 두꺼운 곰같은 손을 가진 그 담임 선생님은
대한민국 내의 합법적 경쟁사회, 정글같은 고등학교 내에
학업 성취가 아닌 그저 사람 자체를 아낄 줄 아는 사람이였다.
그래서 학생들은, 그 남자를 사랑하고 존경했다.
내 모교는 무조건적으로 학업 성적이 우수한 아이만 챙기고, 나머지는 쩌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10대 청소년 시절부터 성적으로 주류와 비주류를 나눈다. 당시 학교의 성적은 신분이였다.
하지만 같이 생활하다보니 항상 특유의 호탕한 웃음과
거대한 당구 큐대를 반토막 내 들고 다니는 매는 엄청나게 아팠지만
굳이 공부를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을 나누지 않으셨던 게 기억이 난다.
오히려 인성적인 측면에 대한 관심과 평가로 공정히 대해 주셨다.
나도 그런 양반이 되고 싶었다. 어쩌면 내 인격에 형성에 작은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착하고 올곧은 남자는 언제나 단명 하는 것 일 까?
그렇게 존경 받던 선생님은
우리가 3학년이 되시던 해
젊은 나이에 대장암에 걸리시고 학교에 출근 하시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졸업했던 다음 해 결국 돌아가셨다고 했다.
이미 졸업한 우리 중 그 선생님의 장례식에 참여한 이들은 매우 적었다.
그의 장례식에 다녀온 몇 명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미 나는 군인 이였고 한 겨울에 입대한 나는 쌀쌀했던 봄날에 첫 휴가를 나와 친구들과 보내고 있었다.
나는 선생님이 돌아가신 걸 6개월 정도 지나 친구들에게
듣게 된 것이다. 더 이상 뵙지 못한다니, 그리 좋아하던 선생님이 무척 뵙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미 시간은 지났는 데 후회하면 무엇하리
그래도 나는 못내 아쉬워
이미 받지 못할 선생님께 혹시 돌아가셨다는 게 소문은 아닐까 하고
핸드폰을 꺼내 1통의 메세지를 보내었다. 물론 그 뒤로 4년 째 답장은 오지 않고 있다.
그는 우리에게 자신의 꿈을 이야기 한 적 있었다.
그는 화학 박사가 되서 나라를 빛내는 인재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유학 비용이 없어서 학원 강사를 했고
부인 분을 만나서 아이가 생겨
안정적인 학교 교사가 되기 위해 사립 학교롤 찾아오셨다고
가정 위해, 굳이 비리가 넘치는 사립학교 오지 않았더라면
또는 정교사가 되기 위해 그리 밤샘을 많이 하시며 업무를 보시지 않았다면
또 우리의 담임이 아니였다면 곰같은 손과 호탕한 웃음을 지어 반겨주시던 선생님은
아직도 이 세상에 살아계셨을까?
선생님 보고 싶습니다. 이제 그 곳은 편안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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