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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기록/세계문화사

프랑스 혁명

by 철학괴물 2019.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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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왕정과 가톨릭교회, 신분제을 기반한 사회로 성직자 귀족 1,2신분에 면세 특권으로 고위직에 대토지 차지 

 

평민은 인구의 절대를 다수를 차지하고 과중한 세금을 부담하지만 정치 소외 봉건제의 잔재 3신분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은 여전히 봉건적 부담을 진다 상공업이 발달하고 부를 축적하면서 계몽사상을 수용 정부의 재정 위기 잦은 전쟁과 미국혁명의 지원으로 재정 적자가 심각하다.

 

혁명의 발발 

 

루이 16세가 재정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서 삼부회를 소집 

표결 방식 각 신분 간 대립이 발생한다. 제 3신분은 머릿수 표결은 원하고 국민 의회 결성과 테니스 코트 서약이 이뤄지고 국왕의 국민 의회 탄압이 일어난다.

 

파리 민중의 봉기 바스티유 함락 혁명의 확산과 농민의 봉기가 시작 됨

 

국민의회의 대응은 봉건제 폐지,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 헌법 제정 재산에 따른 제한 선거제의 입헌 군주제 

입법 의회를 설립하는데 이미 주위 국가들은 혁명의 불길을 잡기 위해 오스트리아 프로이센의 군사적 위협을 하게된다. 

이미 반혁명파와 혁명파의 마찰이 시작된 것이다.  오스트리아에 선전 포고를 하며 혁명전쟁 발발했다

 

 

혁명 전쟁의 발발로 

물가는 상승하고 식량이 부족 해지자 왕권이 정지 되었다 

국민 공회는 공화정을 선포하고 루이 16세와 마리 앙뜨와 네트를 처형했다 

자코뱅파의 권력 장악으로 지롱드파가 숙청 당한 다

 

이후 자코뱅파의 공포정치로 바뀌고 

 

헌법 제정 공화주의 보통 선거제등으로 규정하고 실시 유보됨 

급진적 개혁으로 봉건적 공납 무상 폐지, 징병제 도입 , 최고 가격제가 시행

혁명 재판소와 공안 위원회 강화 

테르미도르의 반동으로 로베스 피에르가 처형 되자 총재 정부의 수입 

총재 정부가 5명 총재가 주도하는 행정부의 양원제 입법부를 구성 

 

프랑스의 혁명의 의의 

 

시민사회의 토대 마련 자유 평등 형제 이념에 구제도 타파, 인간의 보편적 권리를 확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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