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름다움은 청각의 아름다움, 여러가지 소리가 울려서 화음을 만드는 것, 어울림의 정서이다.
그럼 대국을 자칭하는 중국과 서구 열강들의 시각에서의 아름다움은 시각적 형태 美를 추구한다.
우리와 전혀 다른 미적 기준을 가지고 있다. 이를 두 가지를 추구 비교해보자.
내가 내 안의 것을 어울리도록해서 외부것과 소통하여 다시 어울려 함께 하는 미학이
대한민국의 전통적 미의 기준입니다.
미학을 표현하면 3개로 쪼갤 수 있다.
운동 예술 미학 + 소리 예술 미학 + 형태 미술 미학
이쪽이 저쪽이 함께 어울리는 미학이 소리 예술의 미학이라면.
형태적 미술을 추구하는 국가들의 시각적 미학은 항상 돋보이도록 중심에 있어야 하여야 하고
내 아름다움을 보이지 않게 막는 어둠을 무서워야 하며 경쟁자를 이겨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과 한국이 전혀 다른 나라이고 그 강대국이 주위에서도 한국이 지금까지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중국을 중심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대단하냐면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의 중과 중국의 중은 다르다.
중국의 중은 중간과 중심을 뜻하는 것이라면, 한국의 중은 가온데(가운데가 아님)
즉 종이를 접을 때 이 편과 저편의 사이 즉 접히는 곳을 한다.
여기서 한국은 인자인 동시에 인자가 된다. 이쪽의 저쪽의 어울림의 미학을 볼 수 있다.
중용은 가운데 가 아니다.
가운데가 아니라 주체와 대상의 관계, 인자를 끌어올린다.
남편과 여편이 어울려서 그렇다. 자기 스스로 쪽을 높이지 않는다.
어린이의 자기 중심성은 자기 밖에 모르지만 점차 자라면서 에고 센터리즘이 적어진다.
바깥의 것을 임자라고 우리로 어울릴 때 어른스러움 우리가 없다.
일단 반문은 한국과 중국이 없음.
나들 즉 우리가 없음.
나와 같은 사람 그리고 나만 있다면 중국인이나 미국인이다.
즉 한국인은 우리속의 미학을 가지고 있다.
수수한 미를 아는 가?
자기를 중심으로 두지 않기에 함께 옷은 수수하게 입는다.
압도적이라면 도도한 멋, 수수한 것이 최상층부터 깔린다.
수수함의 멋과 깊게 연결된다. 도도한 멋, 왕실의 멋이 있겠다.
압도적 왕이 쓰는 것은 최고이다. 남들은 못쓰게 , 전제주의 권한을 멋으로 보조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한국의 왕실에 쓰는 분운은 어쩔 수 없는 수수함이 있다.
한국 왕실 도자기와 중국 왕실 도자기도 우리라는 성격이 있어서
중국와 한국 도자기 우리의 멋은 바탕이랑 다르다.
수수함의 미학, 소박, 질박, 자연적이다. 멋은 자연적이지 않다.
내가 박의 것을 인자로 어울리는 우리의 미학을 깔고 있음.
도도한 멋이 아님, 중국 서구
다움
학생은 다움이고 이 게 꿈이다.
답기 위해선 어울린다 아름답다.
어울리는 마음이 도와줌
마음이 아밈, 우리가 된 것은 어떤 잣대
이쪽과 저쪽으로 인자로 삼아서 양쪽에
인자를 두고 우리를 만드는 것,
나를 어른은 쪽이 되는것, 우리가 되는 것
나는 나 너는 너 < 어른 >
얼우다 = 어른
한국 사람은 어우으르는 사람, 큰 어른
큰 어른 : 사람 자체가 쪽이 된다.
분 사람을 높힐 때 분이라고 한다.
이분 , 저분 : 높힘
큰 사람이 되는 것, 나를 (저마다) : 혼자
모두 함께 우리 (큰 나이)
작은 나 상태 우리를 말할 때
큰 사람은 족으로 해서 아울이면
쪽 팔리면 안된다 : 변명 : 쪽이 되서
수십억조분의 1은 큰 다른 쪽과
우주적 나 : 어울리기 위해선 잣대가
내 안에의 나가 고루 고루
우리가 안의 고루 고루
우리 안의 기본적 잣대가 고루 고루
남이 있다 . 남과도 어울려야 함.
바깥과 어울리는 것 두루 두루
어울리는 잣대가 두루 두루
고루와 두루를 하는 게 미학의 바탕
비너스는 뽐내는 것. 비너스와 같은 여자는
대부분은 죽으면 : 함께 어울리는 것
나를 쪽으로 만듬, 관중에서도
판소리도 어울림, 저쪽과 추임새가 없으면 소리를 못함
바깥은 소리에 따라 강하게 밀고 나감. 하다가도
추임새하라고 안팍으로 어울려서 판소리는 왁자 지껑
판소리는 모든 사람이 작품 그 자체
완벽한 공연과 조용한 관중 :
나와 남을 아우르른 잣대
공공성 : 다움의 상태 : 공공성 : 한국의 다움으로 공적읜 존재로
모든 사람의 공통의 일 : 사람다움 : 모두의 공공성
공이란 말은 한석분 천자문에 공을
고위공 : 한국 사람은 공공성을 새긴 걸을 정의를 무엇인가 를 틀어
한국의 공은 그위공 : 우리가 된다는 합쳐서 우리가 어떤 위치
그 위에 나와 남을 아울러서 고루하고 두루한다.
대통령은 그 위에 오른다. 우리가 두루하기 위해선 오른다.
개체를 뛰어넘은 것. 고루 고루, 두루 두루
예술가는 눈이 올라가있다.
내려가면 고루고루 두루두루
구체적 어울림의 자극 : 공공성을 중국의 공과 다름
가운데 중와 중은 다른 다.
모른다. 천자문의 덕 : 큰 것
규장각 정조 떄 옥편에는 덕은 대야 해야
내가 아님 : 덕은 크다 . 한국 사람은 나가 있다 저마다 와 우리
우리가 되기 위해선 덕이 필요하고 큰 나를 이룸
내가 큰 나를 바라는 것이 아름다움
이제 출발 : 한국의 바탕의 멋스러움
나 우리 저 : 제대로 알고 세계 를 향해서
인문학의 새로운 혁명
소위, 사람이 '재롱, 엄살, 수다를 떤다" 라는 말을 하고 합니다.
떤다는 울림을 통한 떨림을 말합니다. 즉 어울림의 미학이 한국에 보편적인 정서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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